제이오에이치의 첫번째 호텔 프로젝트 네스트호텔이 2년 6개월 간의 준비를 마치고 지난 10월 정식 오픈했다.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인근에 위치한 네스트호텔은 총 370개의 객실과 레스토랑, 연회장, 라운지, 피트니스 시설을 갖춘 특1급 호텔로, 제이오에이치가 브랜드 개발과 건축 설계, 공간 기획, 인테리어, 디자인 디렉팅까지 전체 크리에이티브를 총괄했고, 발주처인 네스트호텔인천이 직접 운영한다. 네스트호텔은 오픈과 동시에 국내 최초로 ‘디자인호텔스 Design Hotels’ 멤버십 호텔로 등재돼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디자인호텔스는 전세계적으로 그 권위를 인정받는 글로벌 호텔 플랫폼으로, 엄격한 자체 선정기준에 부합하는 50여개국 270여개 호텔에만 멤버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장소에 깃든 이야기로부터
2012년 여름, 지금은 호텔이 들어선 인천공항 남쪽 유수지를 처음 방문했을 때 호텔 터에는 자연적으로 자라난 갈대가 드넓은 숲을 이루고 있었다. 이따금씩 뜨고 내리는 여객기와 수평선 위 파노라마 뷰로 펼쳐지는 일출과 일몰의 광경, 작은 섬들의 실루엣과 멀리 을왕리 해변의 바다 내음이 어우러져 누구라도 여행의 기억과 지난 이야기들을 떠올리게 할만큼 특별한 매력을 가진 곳이었다.
네스트호텔의 이야기는 이러한 풍광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시작되었다. 우리는 호텔 터를 뒤덮고 있던 ‘갈대’를 브랜드와 건축의 상징적인 모티프로 삼았다. 갈대로부터 연상되는 사색과 평온함을 호텔의 정체성으로 이어갔고, 풍경과 조화를 이루는 재료를 선택해 수평적 이미지를 갖는 건물을 디자인했다.
프로젝트 오너와 제이오에이치는 새로운 호텔을 구상함에 앞서 통상적인 부동산 개발 논리를 그대로 따르는 호텔을 짓기보다, 비전을 가진 자본과 좋은 크리에이티브가 만났을 때 실현될 수 있는 의미 있는 개발 사례를 남기자는데 공감했다. 그렇기에 네스트호텔은 시작부터 끝까지 제이오에이치가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오너십을 온전히 가질 수 있었고, 완성되는 순간까지 장소가 가진 고유한 이야기를 그대로 간직할 수 있었다.
현대인의 은신처
빌 게이츠는 미래 전략을 구상할 때 외딴 별장에서 ‘생각하는 주말 Think weekend’을 보내고, 워렌 버핏은 중대한 투자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컴퓨터가 없는 방에서 혼자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조용히 자기 자신에 집중할 ‘창조적 단절 Creative pause’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호텔이 다음 여정을 위해 잠시 거치는 에어포트 호텔의 기능을 넘어, 그 자체로 여행의 목적지가 되는 곳이기를 원했고, 이를 위해 호텔이 줄 수 있는 ‘쉼’의 의미를 정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도시의 속도와 넘치는 정보, 수많은 네트워크에 속해 피로를 느끼는 우리들에게 ‘진정한 쉼’이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혼자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복잡한 서울 도심을 빠져나와 40여 분 만에 조용한 하늘과 바다, 숲의 풍경을 마주할 수 있는 이 호텔은 이미 창조적 단절을 위한 목적지로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네스트 Nest’라는 이름에 갈대를 엮어 만든 안전한 보금자리, 창조적인 생각을 부화시키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담았고, 호텔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표현할 하나의 단어로 ‘은신처 a Hideout’를 선택했다. 아무나 개인 별장을 소유하기는 어렵지만, 누구라도 자기만의 은신처로 삼을 만한 호텔을 발견할 수는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바로 네스트호텔의 출발점이었다.
One Room is One Nest
네스트호텔의 핵심 가치는 ‘한 사람 An Individual’이다. 공간과 디자인, 서비스의 지향점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도록 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돕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가장 먼저 객실의 원형을 설계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그 원형을 쌓아 나가는 방식으로 건물의 덩어리를 완성했다. 객실의 더 깊은 곳까지 햇빛을 들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면서 창의 각도를 사선으로 틀었는데, 이것으로 네스트호텔의 고유한 외관이 만들어졌다. 자칫 차갑게 느껴질 수 있는 노출 콘크리트 마감이지만 사선의 입면에 빛이 만드는 그림자가 풍부한 인상을 만들었고, 370개 객실의 커튼에 각기 다른 색상의 패턴을 부여해 더욱 생동감을 갖게 되었다.
많은 호텔 건축의 경우 이미 큰 덩어리가 정해진 상태에서 객실을 구획하거나 외관을 위해 객실의 개성을 양보해야 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네스트호텔의 건축 설계는 철저히 객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객실은 호텔 공간 중 고객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자, ‘은신처’를 표방하는 네스트호텔에서 객실은 그 자체로 하나의 ‘네스트 Nest’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객실이 작은 동선과 빛의 움직임까지 고려해 세밀하게 구획한 결과물이라면, 로비, 라운지, 연회장과 같은 공용 공간은 불필요한 요소를 최소화하고 재료와 구조 자체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는 설계에 집중했다. 방문객에게 잘 드러나지 않지만, 직원 공간을 호텔 전면에 배치한 것 또한 네스트호텔 설계의 큰 특징 중 하나다. 고객에게 진심을 담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일하는 사람이 가장 먼저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반영한 결과다.
영감의 원천으로서의 장소
네스트호텔은 ‘자연과 문화 컨텐츠를 통해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휴식과 영감을 제공하겠다’는 미션을 가진 호텔로 그 첫걸음을 내딛었다. 가장 먼저 호텔의 철학에 부합하는 책을 선별하는 작업을 시작해, 독립서점 땡스북스와 함께 순수문학, 예술, 실용서에 이르는 1000여 종의 북 컬렉션을 만들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로비 라운지에 비치했다. 디자이너 브랜드나 아티스트와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한 전시,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 등 일회적인 마케팅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브랜드 차원의 활동으로 지속될 수 있는 기획을 순차적으로 실행에 옮기고 있다.
호텔을 이용하는 고객들이 건물 내부와 외부를 자연스럽게 드나들며 자연을 경험하도록 잔디 정원과 자연 산책로, 조깅 코스, 수변 공원을 조성했다. 네스트호텔만의 특색 있는 조경은 오랜 기간 골프장을 운영한 네스트호텔인천의 모회사와 글로벌 조경전문회사 GCH의 협업을 통해 단계적으로 더욱 완성된 모습을 갖춰나갈 계획이다. 호텔 내부의 시설과 소품, 작은 어매니티까지 제이오에이치의 오리지널 디자인과 가이드라인에 따른 셀렉션으로 구성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고, 자연 재료의 질감과 색감을 살린 오브제, 정갈하게 디자인된 그래픽 인쇄물을 접하며 고객들은 네스트라는 브랜드를 감각적으로 더욱 풍부하게 경험하게 된다.
‘부띠끄 호텔’이라는 용어가 대중화 되고 개성 있는 호텔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호텔이라는 공간이 근본적인 차별성을 획득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업적으로 이미 검증되고 규격화된 공식, 정형화된 시장의 기대치가 뚜렷하게 존재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디자인호텔스가 멤버 호텔을 선정할 때 ‘디자인이 강조된 호텔’이 아니라, ‘철학과 오리지널리티를 가진 호텔’에 주목하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시간이 흐른 뒤, 네스트호텔이 많은 사람들에게 조금 다른 호텔, 다시 찾고 싶은 호텔로 기억될 수 있다면, 그것은 치밀한 공간의 설계나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인해서라기보다는 우리가 ‘네스트’라는 브랜드에 담아낸 고유한 이야기에 매력을 느끼고, 호텔의 철학에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 Client
- 네스트호텔인천
- Creative Direction
- 제이오에이치
- Branding
- Brand Development – 제이오에이치
- Verbal & Visual Identity Design – 제이오에이치
- Space Programming – 제이오에이치
- Signage & Environmental Graphic – 제이오에이치
- OS&E Planning & Design – 제이오에이치
- Graphic Design – 제이오에이치, 스튜디오B
- Art Consulting – 제이오에이치, g_exhibition, 큐레이션스퀘어
- Artists – 이광호, 진승연, 채미지
- Architecture
- Concept Design & Schematic Design – 제이오에이치
- Design Development & Construction Documentation – 건원건축
- Design Directing(on-site) – 제이오에이치
- Interior
- Concept Design & Schematic Design – 제이오에이치
- Design Development & Construction Documentation – 대혜건축
- Design Directing(on-site) – 제이오에이치
- Landscape
- Concept Design & Schematic Design – 제이오에이치, GCH Seattle
- Design Development & Construction Documentation – 톨트리디자인
- Lighting
- Lighting Design – 제이오에이치, 태원조명
- Furniture
- Furniture, Fixtures & Equipment Design – 제이오에이치, 대혜건축
- Construction
- Construction Supervision – 동우이엔씨
- Construction – 대림산업